쓰다는 말보단 가볍지만 그렇다고 쓰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미묘하다. 이는 왠지 한숨을 동반한다. 씁쓸한. 어느 쪽에든 모자라다. 쓴 것에도 모자라고, 온전히 달지도 않아서 모자라다. 이도 저도 아니다. 그런데 씁쓸한 것이 조금 더 가벼워져서 쌉쌀해지면 갑자기 입맛이 돈다. 쌉쌀한 것은 늘 다른 강렬한 맛에 동반하여 온다. 쌉쌀한 것을 떠올리면 그것과 연결되어 있는-일상적으로 짝을 짓는-달콤함 이라든가, 아예 거기서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 '향기'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 역시 주인도 못되고 2인자도 못된다. 타고나기를 외롭게 타고난 말이다. 그래서 비어있다. 씁쓸한. 혀를 차는 소리 같기도 하다. 대체로 쌍시옷은 강조하고 싶은 데에 붙기 마련인데, 보들보들한 'ㄹ'이 받침으로 붙어서 그만 미끄러졌다. 씁쓸한. 쓰면 몸에 좋다는데 씁쓸한 건 그다지 효험이 좋을 것 같지도 않고, 서글프다. 맛있지 않다. 허락도 권유도 없이 홀로 때우는 점심이나, 데치거나 무치지 않은 맹한 채소의 풋맛 같기도 하고, 어찌됐든간에 혀를 차야 할 것 같은 이 불만족스러움. 그러나 누구에게 토로할 정도는 아니어서 난감한, 토로해봤자 무게를 나누기는커녕 지저분해지는, 체망에 가라앉은 찌꺼기 같은, 꺼끌거리며 물로 잘 헹궈지지 않는 잔상 같은 것. 씁쓸하다는 것은 유난을 떨지 못해 끝내 억울해지는 것이다. 차라리 부딪혔으면 싶은 비켜간 마음이다. 힘주어 날리기도 전에 실수로 놓아버린 종이비행기. 날려도 그것이 최초는 아닌, 반복되는 추락. 어차피 날아서 어딘가로 사라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던지고 자꾸만 주우러 가는 안도감. 주울 수 있는 곳으로만 날아가는 그 미지근한 추진력. 원하지는 않지만 완벽하게 잃지도 않았고 고통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 소유. 그래도 가진 것. 그럴 수 있다 믿는 것. 그래서 가졌다고 믿는 것. 얼마나 가졌는지 알지 못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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