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다 순서를 넘기다 6분을 넘기다 10분을 넘기다 책장만 넘기다 넘겨다 보는 문 너머엔 인적이 없다 숨 넘어가듯 수를 세는 초침은 어느 새에 숫자들을 넘나들었는지.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다 넘어간 머리카락은 호시탐탐 다시 넘어올 기회를 노린다 한 번이라도 더 만져지려고. 누가 누구를 기다리는지 누구는 무엇을 기다렸는지 무엇은 누구를 기다리는지 시간은 다음 시간으로 계속 기회를 넘긴다 순서도 넘긴다 넘기다 보면 처음으로 다시 넘어온다. 기다려야 하는 사람을 기다릴 때에 마시는 물은 삼키는 것이 아니라 넘기는 것이다. 목구멍 너머 쓸쓸히 넘기는 외로움은 달아서 물에 잘 녹는다 혀끝에 오래 남을 뿐 넘어야 하는 줄은 나를 계속 다그치는데 이것을 넘어도 다음 줄을 또 넘어야 한다 아무래도 줄을 돌리는 쪽보다는 넘는 쪽이 좀 더 좋지만은, 늘 좋지만은 않다. 넘을지 말지 넘으려다 걸릴지 속으로 계산해도 알 수 없는 시간의 벽. 벽이 있다. 담일 수도 있다. 너머에 있는 생각 속의 마음. 마음 속의 생각. 그건 넘겨 짚을 수 있는 오해인가 이해인가. 넘기다 못해 접어버린 페이지가 글자를 쪼갠다. 일렬로 쪼개진 글자 너머의 글자. 그들은 어깨너머 서로가 붙어 있는 듯이 보인다. 그 사이에 초가 한 바퀴를 돈다. 돌면서 모든 숫자와 입맞춤을 하는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분이 다음 분을 만났다 시는 얼마나 기다려야 다음 시로 넘어가는지 주제 넘게 물어볼 배짱이 없어 넘어가지 않는 척 한다 그래서 머리카락은 흘러내린다, 한 번 더 넘겨지려고. 한번은 더 만져지려고...문 너머를 보지 않게 높은 담 너머로 넘어가서, 벌써 다 넘겨진 책장을 거꾸로 다시 넘긴다. 하루는 이틀보다 빠르게 넘어가고, 무엇이든 삼키기보다는 넘기면서, 줄을 돌리기 보다는 넘으면서, 태연히도 나는 그 날들을 웃어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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