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가 머리 속에 둥둥 떠다니는 날이 있다. 그럴 때는 가까운 제과점에 가서 조각 케익이라도 사먹고 치우면 좋으련만, 홈베이킹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러지 못한다. 집에서 좋은 재료로 신선하게 만드는 것만으로 레벨이 다른 고급 디저트가 된다는 사실을, 만들어본 사람들은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같은 값이면 엄청나게 많은 양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본전의식도 한 몫 한다고 하겠다. 며칠 전부터 치즈케이크가 무지하게 먹고 싶어서 만들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 주문한 재료가 도착하자마자 바로 만들기 시작했다. 다른 일들도 중요하지만 내 "디저트 위"가 어서 케이크를 만들어 대령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하지 않겠다고 배짱을 부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노동을 했다. 


1. 재료의 배합 : 지름 18cm 사이즈 기준


(시트)

다이제스티브 1개 

버터 40g


(필링) 

크림치즈 300g

설탕 90g (바닐라 설탕 30+유기농설탕 60)

요거트 120g

생크림 150g (45% 헤비크림)

레몬즙 2스푼 (취향에 따라 가감) 

판 젤라틴 5장 

딸기즙/퓨레 (취향껏)


(장식)

딸기 파우더 약간 (생략가능)

장식용 딸기 약간 


2. 재료에 대한 이야기 


(1) 크라프트사의 필라델피아 크림치즈 




크라프트사의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는 워낙 유명해서 소개할 필요도 없다. 세상에는 수많은 크림치즈가 있고, 한국에서 파는 크림치즈의 종류도 상당히 많다. 그러나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만큼 손이 가는 치즈는 없었다. 나 역시 몇 번인가 다른 크림치즈를 샀다가 완성된 디저트의 맛을 보고는 다시금 필라델피아 크림치즈를 찾게 되었다. 1.36kg 대용량으로 사면 100그램당 가격이 1500원 정도로 가격도 착한 편.



(2) 45% 생크림



생크림은 당연하게도 동물성(우유지방) 생크림을 쓴다. 맛은 가벼운데 속은 니글거리는 식물성 휘핑크림(몸에도 나쁜)을 먹으려고 내가 이 노동을 하는 게 아니니까. 우유 크림은 더 부드럽고 고소하며 끝맛도 매끈하다. 생크림은 자주 사지 않지만 한 번 사면 아예 유통기한이 길고 양이 많은 1리터 용량의 제품을 산다. 이 기간엔 요리에 크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디저트도 많이 먹는다. (당연히 살이 찐다) 주로 일반 생크림(마트에서 파는 지방 38%이하의)이 아닌 지방함량 45%의 헤비크림을 쓴다. 이 크림은 취향을 타는 듯하다. 그 유명한 몽슈슈의 롤케이크도 45%크림을 쓴다. 그쪽은 북해도산이라 비교할 순 없지만 이 크림의 무게감은 38%생크림과는 다르다. 크림을 쓰다가 남으면 지퍼비닐에 담아 냉동한다. 한 번 냉동한 크림은 휘핑이 되지 않지만 크림 파스타 등의 요리에 넣기에는 전혀 모자람이 없다. 그러나 되도록이면 유통기한 안에 다 소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3) 딸기 




장식을 위해 알이 너무 작지 않은 것으로 한다. 그러나 너무 커서도 안 된다. 시트 높이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딸기는 꼭지에 가까운 쪽이 주홍빛이 나며 꼭지가 약간 올라온 것이 맛있다. 단면을 잘라보면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자연스럽게 색이 옅어지며 가운데는 흰색에 가깝다. 또한 중간색도 분홍이라기보다는 오렌지색이 약간 도는 것, 이미지로 말하면 '색온도'가 따뜻한 쪽이 더 진한 딸기맛이 난다. 딸기는 물에 씻고 나면 꼭지를 칼로 제거한 뒤 키친타올로 일일이 물기를 제거해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딸기에서 물맛이 나며 진한 딸기의 맛을 기대하기 힘들다. 어차피 딸기를 망가뜨리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깨끗이 씻는다는 것은 신기에 가까우므로 처음부터 깨끗한(깨끗해 보이는) 유기농 딸기를 사서 그냥 먹는 쪽을 택한다. 



3. 만드는 법 

주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마쳤으니, 슬슬 밑작업으로 들어간다. 


-크림치즈를 실온에 두어서 말랑해지도록 한다. 

-내열이 되는 유리볼에 젤라틴을 반으로 잘라 넣고 찬물에 불린다. 냉장고에 넣어두면 좋다. 

-버터는 전자렌지에서 해동 기능으로 1분 30초 녹인다. 

-다이제스티브를 믹서에 곱게 갈아둔다. 


(1) 시트-1

보통 무스케이크를 만들 때는 바닥에 스펀지 시트나 다쿠아즈를 깔지만 크림치즈가 들어가는 레시피에는 웬만하면 다이제스티브를 이용한다. 무겁고 진하며 신맛이 도는 치즈무스에는 다이제스티브만큼 어울리는 재료가 없다. 곱게 간 다이제스티브에 녹인 버터를 넣어 고르게 저으며 잘 섞는다. 이 작업은 스테인리스 수저가 제일 편하다. 보통은 이 상태에서 바로 틀에 부어 시트를 만들지만 맛을 위해 한 가지 단계를 더하도록 한다. 


(2) 필링-1 : 크림치즈와 요거트 

핸드믹서로 가장 낮은 단계에서 크림치즈를 풀어준다. 실온에 둔 지 한시간이 넘었다면 대체로 쉽게 크림이 된다. 믹싱볼의 가장자리에 묻는 치즈들을 실리콘 주걱으로 정리해가며 꼼꼼하게 풀어준다. 여기에 설탕을 세번 정도 나누어 넣으며 계속 믹싱해 준다. 설탕이 어느 정도 녹으면 요거트를 넣는다. 요거트는 따로 계량하지 않고 믹싱볼 전체를 저울 위에 올려놓은 채 부어가면서(혹은 수저로 떠넣으며) 무게를 맞춘다. 쏟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지만 그릇을 덜 망치고 계량도 정확하게 하는 방법이다. 요거트를 넣었으면, 역시 잘 섞이도록 계속 믹싱해준다. 


(3) 시트-2

이제 시트를 완성할 때다. 버터를 섞었던 시트를 그대로 굳혀도 되지만 무스와 더 어울리게 만드는 나만의 팁이 있다. 바로 중간단계의 치즈필링(위의 것)을 두 스푼 정도 섞는 것이다. 시트에 치즈필링을 섞으면 시트가 좀 더 부드러워지면서 먹을 때 가루로 부스러지지 않는다. 이것은 차갑게 식혀 먹는 무스가 아닌 구워서 만드는 치즈케이크에도 활용하는 비법이다. 치즈 필링을 고루 섞은 가루들을 무스틀 안에 넣고 수저로 평평하게 다져 두께 1cm 정도의 시트를 만든다. 그런 다음 냉동실에 잠시 넣어 둔다. 어차피 케이크를 완성하면 냉장실에서 오래 굳혀야 하므로 오래 둘 필요는 없다. 


(4) 필링-2 : 젤라틴과 크림치즈

찬물에 불려 놓은 젤라틴을 손으로 가볍게 짜서 물기를 제거한 다음, 키친타올을 위에 올려두면 남은 물기를 자연스럽게 빨아들인다. 물기를 제거한 젤라틴을 중탕으로 녹인다. 불 쓰는 게 귀찮으니 전기포트로 물을 끓인 다음 찬물과 약간 섞어 다른 볼에 부은 뒤 그 위에 놓고 슬슬 저어가며 (아까 무스를 만들 때 쓰던 실리콘 주걱으로ㅋㅋ) 젤라틴을 완전히 녹인다. 거기에 치즈 필링 만든 것을 주걱으로 두어번 떠서 넣고 잘 섞는다. 뜨거운 상태에서 치즈필링과 한번에 섞으면 질감이 달라지고 잘 섞이지 않을 확률도 높기 때문이다. 이제는 치즈 필링이 든 볼에 모두 부어 젤라틴과 치즈 필링이 완벽하게 섞이도록 핸드믹서를 사용한다. (가장 약한 단계)


(5) 필링-3 : 생크림과 레몬즙과 딸기파우더 

차갑게 둔 생크림을 휘핑한다. 어차피 섞을 것이기 때문에 믹서에 묻어 있는 크림치즈를 굳이 닦아낼 필요는 없다. 생크림을 무늬가 생길정도로 잘 휘핑한 다음 치즈필링에 세 차례 나누어 넣고 잘 섞는다. 이 때 신맛을 더 원한다면? 레몬즙을 넣는다. 정량보다는 중간중간 맛보면서 취향에 따라 가감한다. 나는 2스푼 정도 넣은 것 같다. 베이킹서랍에 딸기파우더 굳은 것이 있기에 체에 곱게 내려서 조금 섞어 주니 필링이 연한 분홍색으로 바뀌었다. 여기에 두 개의 딸기를 손으로 으깨 즙과 함께 넣었다. 아무래도 가루와는 차원이 다른 자연의 향이 훅 끼친다. 아마 이 번다한 노력들이 딸기 치즈 무스에 어울리는 맛과 향과 색감을 고루 표현해 줄 것이다.  


(6) 시트-3 : 딸기와 치즈무스 

이제 정말로 마지막이다. 냉동실에서 굳힌 시트를 꺼낸다. 시트 위에 딸기를 올려보고 높이가 맞는 것들을 반으로 잘라 무스링에 세워 붙인다. 딸기가 촉촉하기 때문에 달리 무엇을 하지 않아도 고정된다. 둘레를 딸기로 잘 메웠다면 가운데부터 치즈무스를 부어 준다. 마지막 단계에선 치즈무스를 주걱으로 싹싹 긁어서 낭비 없이 하고, 가운데부터 바깥쪽으로 살살 밀어가며 표면을 말끔하게 정리한다. 딸기와 딸기 사이에 빈틈이 없도록 신경써서 메운다. 그러나 여기서도 완벽할 필요는 없다. 다음이 정말 마지막. 시트를 만들고 남았던(반드시 남는다) 다이제스티브 가루를 체에 치며 표면을 덮어주면, 딸기 치즈 무스케이크, 드디어 완성 직전.



4. 완성 

레시피의 완성은 언제나 ‘맛있게 먹는 것’이다. 



무스링에서 케이크를 손상되지 않게 꺼내는 법은 무스링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뜨거운 물에 적신 행주를 사용하거나 토치를 이용해 겉을 뜨겁게 하는 방법(이 방법은 토치가 무서워서 한번도 써보지 못했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띠지를 무스링 안에 넣고 만드는 방법이 있다. 나는 첫번째 방법을 썼다. 자를 때에도 칼을 달구어서 자르면 단면이 매끈하고 아름답게 잘린다. 


맛을 본 결과, 딸기가 시선을 강탈함에도 맛은 치즈가 더 강하다. 과즙을 많이 넣지 않고 딸기를 썰어 넣는 수고를 하지 않아서이다. 과일케이크라기 보다는 딸기로 계절감을 더한 치즈케이크에 가깝다. 포크로 누르면 젤리처럼 쫀득하게 잘려 쓰러지는데 입안에 들어가면 사르르 녹는다. 은은하게 감도는 딸기향과 부스러진 쿠키의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진한 치즈와 어우러져 당장이라도 에스프레소를 부르는 맛. 기존에 먹었던 다른 치즈케이크보다 마카오에서 먹었던 포르투갈식 디저트 <세라두라,serradura>와 맛이 가장 닮았다. 아이스크림처럼 얼려먹어도 별미일 듯 하다. 


*홈베이킹의 가장 큰 장점: 이 모든 케이크가 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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