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충동적으로 오이를 산 것이 잘못이었다. 봄꽃들은 만발하였건만 매서운 바람이 연신 불어 찬 음식이 좀처럼 당기지가 않는다. 오이는 빨리 무른다. 더구나 유기농이 아닌 것은 급속도로 무른다. 오이 다섯 개를 빠른 시간 내에 소비할 방법을 생각하다 피클을 만들기로 결심, 세 개의 껍질을 깎았다. 남은 두 개는 매콤한 오이 무침을 만들어 먹어야지. 

보통 피클을 만드는 오이는 껍질을 벗기지 않고 굵은 소금으로 박박 씻어서 껍질째 촛물에 담근다. 오이는 껍질이 생명이다 싶을 정도로 식감의 차이가 있지 않던가. 그러나 적잖이 까탈스러운 몸이기에 (농약 성분이 많이 남아 있는 채소나 과일을 생으로 먹으면 목이 따갑다) 껍질을 벗기고 검지손가락 한마디만큼 길게 썰어 담그기로 했다. 이것은 이것대로 식감이 산뜻하고 좋다. 약간 매콤한 맛이 있었으면 해서 말린 태국 고추도 준비하고, 색감을 위해 당근, 먹는 재미를 위해 양파를 더했다. 


<재료>

양파 중간 사이즈 1개 

당근 작은 것 1개 (취향에 따라 가감)

오이 큰 것 3개 


<촛물>

물 3컵

설탕 3스푼 

소금 2스푼 

매실청 2스푼 

꿀 1스푼

피클링스파이스 1작은술 

태국 고추 4개(취향껏) 

식초 1컵 

레몬(라임)주스 취향껏 


1. 담을 병 준비하기 

봄맞이 대청소를 하면서 버렸던 수많은 유리병들이 이제 와 아쉬워지는 순간이다. 저장음식을 잘 만들어먹지 않기 때문에 미련 없이 큰 유리병들을 버렸는데 피클을 담가 먹게 될 줄 누가 예상했을까. 다행히 장아찌를 먹었던 병과 뚜껑이 있는 음료병(이걸 뭐라고 부르던데…)을 찾아서 끓인 물을 부어두었다. 이때 유리병의 일부가 찬물에 닿아 있거나 병 자체가 차가운 상태가 아닌지 확인한다. 갑작스런 온도 변화가 일어날 경우 내열유리라도 깨지지 말란 법이 없다. 


2. 재료를 썬다 

피클 재료는 모두 한 입 크기로 썬다. 웬만하면 나누어 먹고 싶지 않을만큼 작게 썰도록 한다. 피클은 주 요리가 아니고 곁들여 먹는 용도이므로 맛이 너무 자극적이어도 안 되고 여러 번 나눠 먹을만큼 크기가 커도 안 된다. 그러므로 주로 먹는 사람(식구)의 한 입 크기를 잘 계산하여 자른다. 다만 아삭아삭 씹는 재미도 있어야 하기에 지나치게 잘게 자르지 않도록 한다. 이 또한 간이 너무 배어서 흐물흐물해질 수 있다. 썬 재료들은 소독한 병에 담는다. 병의 물기를 완벽하게 제거하지 않고 대충 넣었다. 어차피 나중에 촛물은 다시 끓여 넣을 것이므로 지금은 대충 해도 괜찮다.


3. 촛물 만들기 

처음부터 식초를 함께 넣어 끓이면 모두가 힘들어진다. 끓여본 사람은 알겠지만 식초의 향을 코에 대고 들이키는 것처럼 수증기와 함께 강렬한 냄새가 풍겨온다. 나중에는 온 집에 촛물 냄새가 가득할 수 있다. 신맛이 나는 재료는 나중에 넣는 것이 간을 보기에도 수월하므로 식초와 레몬즙(혹은 라임주스)을 제외한 나머지 재료부터 넣어 끓인다. 설탕과 꿀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피클링스파이스의 향이 적당히 배도록 어느 정도 끓인 다음 불을 낮추고 식초를 넣는다. 맛을 보아 신맛이 취향에 맞으면 그대로 재료에 붓고, 좀 더 새콤한 맛을 원한다면 레몬주스를 더한다. 옛 사람들은 저장을 위해서 식초나 소금의 양을 많이 하여 피클을 만들었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냉장고가 있고, 한 번에 많은 양을 만들지 않아 금방 다 먹게 될 것이 빤하다. 그러므로 신맛을 굳이 식초로만 낼 필요가 없다. 비슷한 계열(신맛/단만/짠맛 등)의 맛도 여러 가지 재료를 섞어서 내면 더 그윽한 맛이 난다. 나는 부족한 신맛을 집에 있는 라임주스로 맞추었다. 촛물을 재료에 부을 때는 자잘한 향신료가 들어가지 않도록 체로 거르면서 부어 주는 편이 보기에나 먹기에도 깔끔하다. 촛물을 부을 때는 최대한 입구 부분까지 채워 주어 공기와의 접촉을 막는다. 그러지 않으면 공기가 담겨진 부분에 물방울이 맺혀 계획한 맛에서 싱거워지고, 저장에도 좋지 않다. 


4. 완성 

뜨거운 촛물을 부은 유리병을 바로 냉장고에 넣으면 안 된다. 냉장고 안의 온도가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다른 음식에도 영향을 주는데다, 유리병이 깨지거나 물이 고일 수 있으므로 주의한다. 어차피 하루가 지나면 촛물을 다시 따라서 한 번 더 끓인 다음 다시 부어주어야 한다. 그러니 하루 기다리자. 간이 배면서 채소 안에서 물이 배어나오는데, 이것 때문에 저장기간이 매우 짧아진다. 귀찮아도 이것만큼은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양이 적어도 유리병 두 개 분량의 피클을 며칠 사이에 다 먹게 되지는 않는다. 다음 날 촛물을 다시 끓여 부은 피클은 완전히 식힌 뒤, 냉장고에 넣는다. 



다 만들고 보니, 역시 크고 낡은 유리병들을 버리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예쁘고 적당한 크기의 유리병에 나누어 담으니 보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먹기도 간편할 듯 하다. 

사시사철 채소를 먹을 수 있는데 무엇을 위해 저장을 하고 한 번에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 것인가. 

이것이 적당히 버리고 적당히 갖추는 미디엄 라이프의 묘미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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