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봄. 침묵의 잔. 침묵의 상자. 상자 속 침묵. 침묵은 덩어리. 덩어리의 침묵. 침묵의 경계는 벽이 정하는가 문이 정하는가. 시끄러운 안과 밖. 침묵은 누구의 것. 누구의 침묵. 다르지만 같은 것. 침묵의 종이. 침묵의 펜. 침묵은 가끔 움직이기도 한다면서. 구르거나 멈추거나 하면서. 그럼 나는 이제 움직여야 하는 거야? 혀를, 입술을, 목구멍을, 어르거나 달래거나 하면서. 소리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지. 침묵을 지키려고. 그러나 침묵은 유리창 같이 요란하게 깨져야만 한다고 배웠는데. 누구로부터. 그 누구도 침묵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너와 나는 침묵을 지켜주려고 안간힘을 쓰지. 침묵은 나약한 것이니까. 침묵의 여름. 침묵의 뼈. 비어 있는 뼈의 침묵. 침묵은 잎. 잎은 소리도 없이 담을 넘어 소란스러운 창문 너머를 들여다 보지. 아마도 그게 싫어서 사람들은 자꾸 나무를 베는 것이야. 나무는 침묵을 멈추는 방법을 모르지. 알았다면 세상은 나무들의 신음으로 가득할 거야. 여름이 무성해지면 사람들은 귀를 막고 길을 걸어야 하겠지. 그래서 더 많은 나무를 베고. 가을은 침묵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 이제 곧 겨울이 올 테니까. 눈이 내리지 않기만을 빌면서 안과 밖을 침묵으로 가득 채워 봉하고는, 저 밑으로 떨어뜨리지. 그렇게 하면 좀 깨질까. 깨질까 봐. 침묵은 공기. 돌의 침묵은 공기가 정하는 것. 구르거나 멈추거나 서로 부딪히거나 하는 것은 침묵을 지키는 데 쓸모가 없어. 모든 움직임은 침묵이 통제한다. 나약한 것이니까, 조심해. 침묵은 귀를 가장 두려워 하지. 귀를 쫑긋 세워 침묵을 위협하지 않도록 주의하기. 침묵의 바람. 바람의 침묵. 바라는 침묵. 바랜 침묵. 침묵의 끝과 시작은 대체 누가 정하는 것인가. 어찌됐든 눈이 내리면 첫 발자국과 함께 오도독 깨어지는데. 누구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지. 다시 말하지만, 침묵은 나약한 것이야. 이제부터 나는 이 나머지의 공백으로 침묵을 홀로 남겨두기로. 이 허전함, 이 모자란 기분을 기꺼이 남겨두기로. 침묵은 은근히 혼자이기를 바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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