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념 수납 선반 만들기 

나에겐 주방살림과 관련된 로망이 있는데, 수납형 조리대나 그와 유사한 아일랜드식탁, 그리고 양념선반이다. 이번에 만든 것은 그 중 하나인 양념 선반. 그 동안 이것저것 요리를 해 먹으면서 모은 각국의 양념들이 좁은 싱크대 위에 가득 올라와 있었는데, 요리할 때는 바로바로 꺼내 쓰기 편리하지만 가뜩이나 좁은 조리대가 양념거치대 용도로 쓰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계속되었다. 낡디 낡아 시트지까지 다 벗겨진 책상을 버리지 않고 주방에 두었기에 그나마 도마를 깔고 칼질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났지만 (테이블이 mdf라서 다이소 비닐커버를 깔아서 쓰고 있다) 커다란 트레이에 하나 가득 담긴 양념과 소스의 부피 때문에 기껏 생긴 조리대를 제대로 활용하기가 벅찼다. 


시스템 키친에는 대부분 세로로 짜여진 슬라이딩 수납장이 포함되어 있다. 기름이나 각종 소스 등을 보관하기에 적절할 뿐더러 바퀴가 달려 꺼내쓰기도 무척 편리하다. 친구 집에 갈 때마다 그게 뭐라고 참 부러워하며 여러 번 꺼냈다가 밀어넣었다가 해보기도 했다. 인터넷을 뒤져 보면 틈새 수납장이라고 해서 비슷한 것들을 팔고 있지만 정작 치수를 재 보면 우리집 틈새에는 규격이 맞지 않아 구입할 수 없었다. 높이가 너무 낮아서 활용도나 편리성 면에서 떨어지거나 어떤 것은 미관상 퀄리티가 나쁘기도 하다. 비싸다면? 애초에 선택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예전이라면 ‘그런 거 없이도 잘 살았어’하고 나를 달랬을 테지만 목재로 소소하게 가구만들기를 시작한 이 시점에, 로망을 현실로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2. 작은 틈새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


우리집의 싱크대는 조리대가 한 칸이다. 정말로 도마를 하나 깔면 끝인 공간. 나머지 공간은 가스레인지와 설거지통이어서 주방용 가전제품을 놓을 공간이 무척 협소하다. 정수기와 커피그라인더를 놓고 나면 전기포트는 조리대로 쫓겨나게 되어 있다. 그 한 칸의 싱크대에 양념들이 올려져 있었으니 불편함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그런데 주방 싱크대와 방문 사이에는 약 10센티미터 정도의 폭이 존재한다. 방에서 나와 화장실, 또는 주방, 거실로 이동하는 경로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으면서 비어 있는 공간. 우리집의 죽어 있던 10센티의 공간이 늘 거기 있었던 것이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말이다. 틈새수납장의 로망을 이곳에 실현시키기로 하고, 구상에 들어갔다. 



3. 디자인과 기능


수납의 기본 원칙에 따라 무겁고 큰 것은 아래쪽에, 작고 가벼운 것은 맨 위에 두는 구조로 한다. 그렇다면 3단으로 할 것인가, 4단으로 할 것인가. 각기 장단점이 있다. 폭이 좁아지면 많은 양념을 수납할 수 있는 반면에 넣고 뺄 때에 좀 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양념이 떨어지지 않도록 칸막이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옆이 아닌 위로 꺼내는 형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많은 것을 수납할수록 여백이 줄어들어 거실쪽(싱크대의 반대쪽)에서 보았을 때 답답한 느낌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틈새수납장의 형태는 3단으로 결정하고 주어진 여백보다 조금씩 작게 만들어 코너를 돌 때에 걸리거나 부딪히지 않도록 하였다. 



대신에 폭은 110mm에서 조금도 양보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다. 가림막을 얇은 미송합판으로 하더라도 각각의 두께가 4.5mm가 되므로 앞뒤 1센티미터 정도의 공간을 차지한다. 가지고있는 양념통들의 기본 사이즈는 5~10cm 정도여서 수납장의 폭을 10cm로 맞추면 최대 두 줄로 수납이 가능하다. 가장 많이 쓰는 양념들의 높이와 조리하는 사람의 평균 허리 높이, 손으로 집는 편리한 높이를 계산하여 수납장의 높이를 780으로 맞추었다. 작은 양념들은 위에서 뚜껑을 슥 집어들기만 하면 된다. 2단과 3단은 좀 더 큰 소스와 양념들, 다른 수납 공간에 넣기에는 자주 사용하면서 외관이 나쁘지 않은 것들, 특별히 장식용으로 두고 싶은 것들을 모아 차곡차곡 놓았다. 뒷판이 가벼운 합판으로 되어 있고 선반의 폭이 좁기 때문에 무거운 통조림과 곡식류 등을 하단에 두어 최대한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도록 했다. 이 역시 거실에서 보아도 거슬리지 않도록 포장이 예쁜 것들을 위주로 하였다. 



4. 실수와 임기응변 

목재를 주문하여 조립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 앞쪽 가림막으로 쓸 합판만 주문하고 뒷판을 주문하지 않은 것. 결국 앞판으로 쓰려던 것을 뒷판으로 댔고 앞은 빈 상태가 됐다. 하지만 이대로 두면 조금만 움직여도 놓여 있는 것들이 우르르 쏟아져 버릴 텐데…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수납장의 양 측면에 아주 작은 구멍을 두개씩 뚫었다. 그리고 공예용 피아노줄을 두 줄 끼워서 단단히 묶고 더 단단한 고정을 위해 측면에 목심 2개씩 끼워 넣었다. 낚시줄이든 피아노줄이든 직접 묶어 보면 알겠지만 어떻게 해도 완벽하게 타이트한 상태로 묶어지지는 않는다. 다른 것을 끼워넣어 장력을 높여야 한다. 나중에 또 나무를 주문할 때 합판을 추가로 주문해서 덧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후로 그런 일은 없었다. 합판과 달리 피아노줄은 눈에 띄지 않아 미관상 더 나은 부분이 있었고 사용해 보니 피아노줄 만으로도 충분히 고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피아노줄은 정신 집중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피아노줄은 정신 집중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5. 사용 후기


양념선반은 요리할 때 사용하다 보면 소스나 물 등으로 오염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제작할 때 오일이나 마감제를 여러 차례 발라야 하지만 귀찮아서 내버려 두었다. 그 때문에 좀 더 조심스럽게 사용하고 있지만 사용에 큰 불편은 없다. 사용하기 쉽게 바퀴를 달았는데(슬라이딩~) 수납장을 움직여 다른 곳에 가져가 쓰거나 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그대로 놓아 두고 양념만 집다가 쓴 뒤 다시 제자리에 돌려 두고 있다. 무게중심, 안정성을 위해서는 바퀴가 없는 쪽이 낫지만 바퀴를 제거하면 다시 높이가 달라지므로 이 역시 내버려두기로 한다.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조리대가 넓어졌다는 것, 그리고 의외로 ‘예쁘다는 것’. 그저 편리함을 위한 로망이었지만 만들고 보니 비주얼이 마음에 쏙 든다. 유용하고 예쁘기까지 해서 비슷한 걸 또 만들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다만 우리집엔 이런 수납장을 만들어 넣을 틈새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이 함정. 


나는 양념과 소스, 허브를 보면 마음이 설렌다. 거실에 앉아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예쁘게 놓여 있는 양념과 소스, 각종 허브, 꿀과 시럽, 직접 담근 바닐라설탕, 자주 마시는 차와 토마토 통조림, 빠르보일드 리조또용 쌀. 이런 것들이 눈에 띄면 마치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돈이 많은 부자가 아니라 나를 위해 제대로 맛있는 것을 해먹고 사는 사람인 것 같은, 그런 만족감에 휩싸인다. 매일의 일상은 그렇지 않더라도 가끔은 나를 속여 보는 것. 향기롭고 맛있는 식사를 대비하는 나의 양념 선반은, 이미 나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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