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봄. 차가운 아침, 차가운 그림, 차가운 펜, 차가운 라면, 차가운 그림자, 차가운 것들은 나를 놀래킨다. 그것이 원래 차갑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무감각은 준비되지 않는다. 차가운 몸, 차가운 이불, 차가운 몸으로 뜨거운 손을 달래면서 나는 확신한다, 세상에 식지 않는 것은 없어. 무엇으로 확신하냐고. 식지 않는 것을 만져본 적이 없어서다. 점점 뜨거워지는 것도 어느 순간부터는 방향을 바꾸어 점점 차가워지겠지. 지나치게 차가워서 감각조차 마비되는 차가움은 차가움이라 부를 수 있을까. 통증이 아닐까. 그림자라고 해서 늘 실체보다 차갑지는 않다. 얼음처럼 차가운 컵. 에 담긴 차가운 맥주. 를 더 차갑게 만드는 뜨거운 혓바닥. 을 달래는 차가운 입맞춤. 으로 차가워지는 심장. 은 차가운 것들에 내성이 없어 자꾸만 서로의 몸을 부빈다. 그럴수록 바깥은 차가워지고. 나는 달아오르고. 뾰족한 고드름을 삼킨 내장은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면서 더욱 위험해진다. 삼켜도 녹지 않는 눈이 있다면, 그것은 눈이 차가워서인가 내가 차가워서인가. 영원히 식지 않는 눈사람. 눈이 많이 오는 날은 꼭 눈사람을 만들자. 수치심은 차갑다. 통각이 있는 한 무감각은 준비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온도를 잊거나 온기를 잃었을 때, 수치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차가움을 느낀다는 것은 내가 온도를 간직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과정. 통증을 외면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오랜 차가움을 인내해야 하는 걸까. 차가움에 무뎌지는 것은 깨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익숙해지는 것이다. 일상의 모든 날카로운 감각들에, 익숙함을 가장하여 얼어붙는 것이다. 스스로 차가움이 되어 울거나 웃지 않게 되는 것. 차가움에 대해 불평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것. 차가움에 몸을 떠는 이들에게 공감하지 않는 것. 차가운 마을, 차가운 도시, 차가운 섹스, 차가운 미래, 차가운 물 속. 차가운 인형은 얼마동안 차가웠을까. 차갑다는 단어를 반복해서 쓰기만 해도 도망치고 싶은데. 여름에는 차가움이 미덕, 그 예측 가능함. 외로움을 느끼지 못한 거야. 외로움이 당연하니까. 따뜻함이란 믿을 수 없는 예시로는 차가워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차가운 연대. 모든 것을 얼려버리고 싶은 배제. 찬, 차디찬. 차가운 차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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