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왜 그랬을까. ‘그런 것’과는 별개의 다른 현상이나 결과. 미처 생각지 못한 이유들이 ‘그런데’의 뒤로 숨는다. 그런데는 비상계단이다.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가는 계단이 동시에 있다. 다른 건물로 넘어가는 구름다리나 지하통로가 있을지도 모른다. 인생이 하나의 접속사로 설명되어야 한다면 나는 ‘그런데’였으면 한다. 예측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이겨낼 수 없는 절망이 준비되어 있지도 않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뜻밖의 방해를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나 ‘하지만’ 보다는 미래가 열려 있다. 비슷하게 나열되는 일들 중 하나이거나, 정반대의 결과라고 단정하지 않아도 된다. 어떤 문장에도 ‘그런데’를 붙이면 느낌이 새로워진다. 그런데 나는 사과를 정성스레 씻었다. 그런데 그녀는 홍차를 우리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사과를 깎지 않았다. 그런데 남겨둔 홍차는 미지근하게 식어갔다. 그녀는 사과를 그리고 있었다. 사과는 매우 붉고 매끈하였다. 그런데 그녀가 쥐고 있는 것은 흑백의 목탄이었다. 그런데 우유의 유통기한이 어제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모나미 볼펜을 쓰고 있다. 그런데 볼펜이 만들어내는 글자가 얼룩지지 않고 무척 깨끗하다. 그런데 밖에서 열린 문틈을 할퀴는 바람의 거친 울음이 들렸다. 그런데 정말 사과는 맛있었다. 그런데 이 사과는 언제 나무에서 딴 걸까? 그런데 무척 졸리다. 그런데 자면 안 된다. 오늘밤까지 버틸 수 있을까. 그런데 갑자기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그런데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나는 머뭇거린다. 그런데는 조심스럽다. 앞과 뒤의 누구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기지 않겠다는 고요한 의지. 그런데 어제 읽은 책 속의 그와 그녀는 서로 사랑하였고, 눈이 먼 그들에게 외모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가끔은 관찰당하는 기분을 느낄까. 그런데 그 관찰자는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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