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하지만 왼뺨을 맞았을 때는 오른뺨을 내어주어라. 손은 뺨보다 비밀이 많고 독립적이다. 연필을 쥐고 있는 손은 간악하다. 요리조리 방향을 틀어가며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인다. 손이 적는 것이 원래 내 생각인지, 손이 적어서 내 생각이 된 것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손이 하는 모든 이로운 일과 배덕한 일과 수치스러운 일과 대담한 일은 모두 한 사람의 것이다. 믿기 어려운 일이라 가끔 딴청을 피운다.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어떤 언어이든 반복하려는 버릇. 새김질은 이빨만의 것이 아니다. 손이 종이를 더럽힌다. 혹은 칠한다. 접거나 그리거나 구긴다. 손은 늘 종이를 귀찮게 군다. 원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은 종이의 주인이기도 해서, 잘리고 갈기갈기 찢겨도 묵묵히 참을 수밖에 없다. 손이 악기를 연주한다. 마이크를 잡는다. 건반을 짚고, 공기구멍을 막는다. 손은 음악을 재현한다. 공기를 떨게 하는 재주를 부려 거기 있음을 알린다. 손도 고독하고 싶을 때가 있다는 걸 알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재미를 위해 뭔가를 희생시켜야한다면 가장 유력하고 유능한 게 손이다. 손님과 손은 왜 같은 이름을 가졌는가. 어느 손은 깍듯이 대접해야 하고, 한쪽은 대접 받아야 하는가. 손님의 손은 손님의 것이고 나의 손은 나의 것이다. 나의 손님의 손은 나의 손님의 것이고, 나의 손은 손님이 되지 못한다. 되었다가도 금방 다시 손으로 돌아온다. 님은 어디갔을까. 손의 님이 그립다. 이미 적은 글자를 지우개로 지운다. 다 지워지지 않고 흔적이 남았지만 이해하기 어렵다. 내용을 알아보는 것은 손의 역할이 아니다. 기억하는 것도 손의 역할이 아니다. 손은 그저 쓰고 지우고 접고 그리고 칠하고 구긴다. 그리고 찢는다. 그리고 마침내, 귀찮아서 참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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