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팥으로 만든 디저트 

삶은 팥은 좋아하지만 팥이 들어간 디저트류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설탕에 조린 팥앙금은 웬만해선 피한다. 팥의 껍질이나 알이 남아있지 않도록 으깨고 설탕을 과하게 넣어 눅진하게 만든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직접 쑨 팥’이 대유행을 하면서 판도가 달라졌다. 매장에서 직접 팥을 삶고 설탕의 양을 줄인 현대식 팥빙수 맛집들이 생겨나는가 하면 팥이 들어간 디저트의 퀄리티도 달라졌다. 전국의 어딜 가도 팥 디저트가 대세여서, 한국인의 팥 사랑에 진저리를 치기도 했으나 어릴 때부터 집에서 직접 삶은 팥을 간식으로 먹고 자란 탓에 나 역시 팥으로 만든 디저트에 어느 정도 흥미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패를 하더라도 유명한 팥 간식은 한번쯤 먹어보는 것이 일종의 통과의례라고 할까. 


정성과 노동이 들어간 디저트란 당연히 맛이 있고, 또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 정성과 노동이 허무한 것이 되어 버린다. 덧붙여, 디저트를 먹기 위한 노력(찾아가고, 기다리고, 돈을 내는) 또한 그 맛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다. 허나 이 모든 과정을 생각하면 번거롭지 않은가. 


2. 팥 아이스크림

팥이 들어간 간식 중에서 가장 가성비 좋은 것은 아이스크림이다. 동네 수퍼에서 개당 400원(원미동 기준)이면 살 수 있는 아주 저렴한 간식. 칼로리도 밀가루가 들어간 빵이나 과자류에 비해 낮은 편이고 포만감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팥 아이스크림은 우유와 잘 어울린다. 팥은 텁텁한 끝맛이 있는데 그것을 설탕과 우유로 부드럽게 만든다. 대신 우유의 함량이 높을수록 입 안에서 빨리 녹고 식감이 부드러우나 끝맛이 느끼하다. 한 때 인기를 끌었던 ‘파시통통’이 그 예다. 파시통통은 팥보다 우유맛을 강조한 아이스크림으로 팥을 좋아하지 않아도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맛이지만 빨리 녹아 금방 텁텁해진다. ‘아맛나’는 연유맛이 나는 빙과 안에 팥앙금을 넣었는데 이 또한 팥빙수를 떠올리게 하는 맛이지만 팥이 너무 눅진하고 달다. 개운한 맛과는 거리가 있다. 이 두 가지는 여름보다는 봄가을에 어울리는 아이스크림이다.  



3. '비비빅' 먹는 법 

비비빅이야말로 여름에 먹기 좋은 팥 아이스크림이다. 팥과 우유와 수분의 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먹는 동안 빨리 녹지 않고 개운하다. 다른 팥 아이스크림보다 팥이 덜 삶아져 있어 씹는 맛이 있고 식감이 덜 눅진하다. 


비비빅은 바 형태의 팥 아이스크림 중 가장 단단하다. 얼음이 끼어 있으면 정말로 팥빙수를 먹는 기분이 나므로 최대한 차갑게 먹는다. 차갑게 먹는 것의 기준은 그야말로 ‘꽝꽝’ 언 것을 말한다. 번화한 거리에 있는 수퍼나 편의점의 비비빅은 별로 맛이 없다. 아이스크림의 회전율이 높기 때문에 ‘꽝꽝’ 얼지 못한다. 오래된 동네 수퍼의 성에가 잔뜩 낀 냉장고 바닥에서 꺼내먹는 비비빅이야말로 최고의 맛을 낸다. 


이나 잇몸이 약한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는 방법이지만 비비빅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혀로 녹여 먹는 것이 아니라 단단한 상태에서 깨물어 먹는 것이다. 녹여먹으면 팥의 깔깔한 텍스쳐가 목에 걸린다. 기침을 유발할 뿐더러 녹는 속도가 빨라져 맛의 균형이 떨어진다. 한 여름 날씨를 기준으로 70%까지 먹으면 녹아서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개운함이 덜하다) 웬만하면 처음부터 시원한 장소에서 먹거나 집으로 와서 냉동실에 넣어둔 다음 최소 30분이 흐른 뒤에 먹는다. 


'직접 쑨 국내산 팥'으로 만든 '정성스런' 디저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공산품이지만 

그만큼 값싸고, 구하기 쉽고,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이라니 얼마나 고마운지. 

비비빅은 아이스크림의 지존은 아니지만 적어도 '팥 아이스크림' 가운데서는 손에 꼽힐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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